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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공자분들..제 수행평가 채점해주세용 역사 선생님이 어엄청 까다로워서 이번에 준비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일단

역사 선생님이 어엄청 까다로워서 이번에 준비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일단 신라 삼국통일의 세가지 요인 적고나서 긍정인지 부정인지 한 관점 선택하고 그 이유를 두 개 적는 건데 논리적으로 적으래용..채점 부탁드려용,,——————————————————————————신라의 삼국 통일 7세기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국의 이익을 위해 합종연횡을 반복했다. 결국 한반도 통일을 이루어낸 국가는 신라가 됐는데, 그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으로는 김춘추의 외교적 노력을 들 수 있다. 신라가 나제 동맹을 깨고,백제의 영토였던 한강 유역을 빼앗자 백제는 신라를 계속적으로 공격했다. 특히 대야성을 공격하여 김춘추의 딸 고타소, 그리고 사위 김품석이 목숨을 잃자 그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키기로 결심했다. 먼저 고구려에 가 동맹을 맺으려고 했지만, 죽령 이북의 땅을 내놓을 것을 고구려가 원하자 뒤를 돌았다. 이 때 김춘추는 포기하지 않고 고구려와의 안시성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간 당에 가 군사 동맹을 요청하고, 결국 나당 동맹이 결성된다. 즉, 김춘추는 고구려와의 동맹 체결을 거부한 것으로 보아 신라에 불리한 조건이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했고, 외교적 노력으로 결국 당과 동맹을 맺어 군사적 힘이 보태져 통일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두 번째 요인은 고구려와 백제의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라고 본다. 당나라와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후, 각각 고구려, 백제 땅을 차지하기로 했다. 우선 백제의 상황을 보자면, 지배층의 분열로 정치적 혼란에 빠져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의자왕이 사치와 실정에 갈수록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 나당 연합군은 결과적으로 사비성을 포위하여 백제는 항복을 했다. 두 번째로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죽음 이후 아들들 사이의 권력 다툼 때문에 정치적 혼란이 왔다. 이를 틈타 나당 연합군은 총공세를 하여 고구려도 결국 멸망하였다. 즉, 이 두 나라의 혼란스러운 배경이 있었기에 나당 연합군이 수월히 두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세 번째 요인으로는 나당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당은 한반도에 각각 안동도호부,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를 차지하려고 했다. 아무리 백제와 고구려를 전에 멸망시켰다고 해도 당이 모두 차지하면 삼국 통일에 대한 신라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함께 당을 선제공격하고, 당도 신라를 말갈,거란 기병과 함께 침략했다. 신라는 쇠뇌부대 등으로 당에 맞서 결국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격파하여 신라는 삼국 통일을 완수하였다. 즉, 나당 전쟁에서 승리를 하여 영토를 빼앗기지 않고 결국 삼국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나는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첫 째, 같은 민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외세인 당의 힘을 빌린 점이 아쉽다.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갈등에 외세를 끌어들였고,그 선택은 민족의 분열과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역사가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도적을 끌어들여 형제를 죽였다’며 비난을 한 것도 이 까닭에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통일이 협상이나 화합을 통한 것이 아니라 전쟁과 정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백제와 고구려인들의 관점에 입각하면 통일이 아니라 패망과 지배로 느껴졌을 가능성이 크다. 승자의 입장으로만 역사가 쓰여져 백제인들과 고구려인들의 입장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지만 전쟁을 통한 통일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쓰신 게 티 나서 기본점수는 드립니다만, 여전히 역사 선생님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부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채점 결과

1. 삼국통일 3가지 요인 설명

전체적으로 요인 3가지를 충실히 작성했고, 논리 전개도 제법 탄탄합니다.

김춘추의 외교적 노력 → 나당 동맹 성립

고구려·백제 내부 분열 → 멸망의 빌미

나당전쟁 → 신라의 독자적 통일

각 요인을 역사적 사건과 연결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점은 좋습니다.

다만, 첫 번째 요인의 서술이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풀어써서 살짝 산만해진 느낌이 있습니다.

예: 김춘추의 사적 동기(고타소, 김품석) → 고구려 외교 실패 → 당과 동맹 → 나당 동맹 결성, 이렇게 단계별로 구분했으면 더 좋았을 듯합니다.

2. ‘긍정/부정 중 선택 + 이유 2가지’

질문에서 긍정인지 부정인지 선택하고 그 이유 2가지를 적으라고 했는데

→ 부정적인 관점으로 선택했고 이유 2가지(외세 개입 + 전쟁과 정복)를 제시한 것은 정확합니다.

게다가 신채호의 독사신론 인용까지 추가해서 역사적 비판의식도 곁들인 건 아주 적절합니다.

(이런 부분은 까다로운 역사 선생님도 높이 살 만한 부분입니다.)

3. 아쉬운 부분 (감점 요소)

‘나당전쟁’을 세 번째 요인으로 넣은 건 무리가 있긴 합니다.

나당전쟁은 사실상 ‘삼국통일 이후’ 신라와 당 간의 대립이니까요.

선생님이 “7세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배경”을 물으셨다면, 보통 나당전쟁은 ‘통일 과정의 최종단계’가 아니라 ‘통일 이후 독립적 지위 확보 과정’으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세 번째 요인은 신라의 군사력(또는 내부 결속력) 혹은 지리적 이점 등을 언급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백제와 고구려인의 관점”을 언급하긴 했지만, 실제 역사 자료를 보면 일부 백제·고구려 유민은 신라와 협력하기도 했고, 일부는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교과 수준에서 이렇게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역사 선생님이라면 “너무 단편적으로 ‘패망=지배=분열’만 강조한 것 아닌가?”라는 트집을 잡을 수 있습니다.

총평

전체적으로 교과서 수준에서 요구하는 논리적 구조(요인→선택→이유)를 잘 갖추셨습니다.

역사적 사례와 관점도 적절히 연결했고, 분량도 좋습니다.

단, 나당전쟁의 위치와 역할을 조금 더 정교하게 구분하면 더 완벽했을 겁니다.

역사 선생님이라면 “너무 정복사관으로 몰아간 건 아닌가?” 하고 꼬집을 수도 있으니 살짝 보완 필요.

점수 (가상의 20점 만점 기준)

17점

(내용 충실 + 구조적 논리성 확보 – 나당전쟁 위치와 ‘정복’ 프레임 조금 조정 필요)

보완 팁

나당전쟁을 ‘통일의 결정타’로 넣기보다는 ‘통일 후 자주성 확보’로 재배치하는 게 좋습니다.

“신채호의 독사신론”처럼 사료 인용 센스는 계속 살리세요.

선생님이 요구하신 ‘논리적 관점’과 ‘역사적 사실’이 균형 맞게 들어간 좋은 답변입니다.